노래 가사 번역은 어렵다! (2)

 제목에서도 토로했듯이 노래 가사 번역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가사 원문을 알고서 번역할 때는 스크립트 없이 해석을 해야 하는 자막 만들기보다 훨씬 쉬울 것 같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가사를 단순히 해석만 하려고 하면 쉬울 수야 있겠습니다만, 이런저런 신경을 써서 해석하려면 어지간한 고민 갖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게 가사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루루님께서 쓰셨듯이 노래 가사라는 건 일종의 시라고 생각해야 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사 번역의 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가사는 노래라는 것에 종속되어있는 이상 '노래할 수 있어야' 진짜 노래 가사라고 볼 수 있죠.

 저의 가사 번역 원칙이라는 게 있다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게 하자'입니다. 여기서 '뜻'이란 일본어를 단순히 한국어로 옮긴 것뿐만 아니라 가사에 담긴 속뜻까지도 잡아내어 표현한 것을 뜻합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 국어 공부를 하면서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구절들에 KO패 당했기 때문이에요. 노래 가사가 시만큼 대단히 난해한 건 아닙니다만 [일본어:한국어]의 1:1 해석을 하게 되면 '이게 뭔 소리여?'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해석하는 사람의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노래가 불려지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가사를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음 가사를 한 번 봐주세요. 사립 아라이소 고등학교 학생회 집행부 드라마CD 6번 트랙곡「三日月の夜(초승달 뜬 밤)」가사 일부입니다. 한때 천애의 bgm으로 쓰였던 곡 ^^; 듣고 받아적은 것이라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つかんだ腕を引き寄せることもなく
  立ち盡くすだけ 二人の上には
  消えそうな月 見動きもできずに
  臆病者だと笑う 冷めかけた夜


 이 가사를 그냥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붙잡은 팔을 끌어당기지 않고
  서 있기만 할 뿐, 두 사람의 위에는
  사라질 듯한 달, 움직이지도 못한 채
  겁쟁이라고 웃는 차갑게 식어버린 밤



 뭔가 멋진 말들이 늘어져 있기는 한데, 각 구절들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노래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은 두 사람입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두 사람이겠죠. 그런데 서로 팔을 붙잡고 서 있을 뿐, 다가서질 못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겁쟁이인 거죠. 그런데, 두 사람이 겁쟁이라며 웃고 있는 주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두 사람의 위에서 두 사람을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달, 그것도 사라질 듯 말 듯한 작은 초승달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つかんだ腕を引き寄せることもなく
  꽉 붙잡은 두 팔을 끌어당길 수조차 없이
  立ち盡くすだけ 二人の上には
  그저 서 있을 뿐인 두 사람의 머리를
  消えそうな月 見動きもできずに
  비추는 초승달이, 미동도 하지 못한 채로
  臆病者だと笑う 冷めかけた夜
  머뭇거리는 우릴 비웃는 차갑디 차가운 밤


 일부 덧붙여진 말도 있고, 일본어를 그대로 옮겨적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또 별로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가사보다는 조금 더 의미 전달이 확실히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런데 일부 말을 덧붙인 것은 의미전달을 위해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사의 음절수를 동일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던 거죠.

 좋아하는 애니를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일상 생활에서도 그 애니의 오프닝, 엔딩곡을 흥얼거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야 일본어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으니 이렇게 흥얼거릴 수도 있지만, 만약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우리말로 따라부르는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말 해석과 원어 가사의 음절수가 비슷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따라불러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가사의 음절수에 맞도록 가사를 해석하는 수밖에 없죠.

 요즘은 그동안 조금씩 해오던 음절 맞추기 번역을 모든 노래 가사로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예는 애니 '오늘부터 마왕!'의 오프닝, 엔딩곡이네요. 해석도, 음절수 맞추기도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많이 하다보면 멋진 솜씨로 노래 가사를 번역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해석하게 되는 노래는 두말할 것 없이 애니 노래인데, 애니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같이 감상을 나눌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가사를 번역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애니 노래 가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제가 노래를 감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똑같이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사 번역이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겠죠. 아직 실력이 많이 미숙하므로 좋은 가사를 만들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by 守辰사랑 | 2004/09/14 18:12 | †번역과 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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