守辰사랑이 잡고 있는 번역의 방향 (1)

 저는 일본어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생활 속에서 짬을 찾아 혼자서 일본어를 공부해왔습니다. 또한 처음 일본어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따지자면, 지금까지 일본어를 접하고 산 시간은 불과 4년 반밖에 안됩니다. 저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자막을 만드는 일을 '이은지'라는 인간의 주된 일과로 끌어들이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온라인상에서 '守辰사랑'의 취미생활일 뿐이에요. 아직까지 제게는 일본어 공부와 자막질보다는 제 학과 공부가 중요하고, 제 건강이 중요하고, 제 생활이 중요합니다. 이 좋은 예로 지난 학기 시험 준비 때문에 한동안 자막일을 방치했던 것을 들 수 있겠죠. 덕분에 밀린 자막들을 만드는 데 고생 좀 했...

 ...끄응. 이야기가 잠깐 샜습니다. -_-; 어쨌든 저는 그동안 일본어를 오래 배우지도 않았고, 하물며 온 신경을 기울여서 공부한 것도 아니었으니 결코 일본어를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가 현재 일본어를 '자막 만들기'라는 수단을 택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제 실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위안삼아 얼렁뚱땅 자막을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적어도 남에게 보이는 자막인 이상, 자신이 가진 힘만큼은 최대한 발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도 번역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름대로 고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의 제 고민을 풀어놓은 글입니다. 제 자신이 깊이, 다양하게 고민해본 것도 아니면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守辰사랑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가고 있구나'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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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번역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딱 잘라서 정의내릴 수 없습니다.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려 전달해야 한다'는 번역 원칙의 큰 줄기는 누구나 인정하겠죠.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세세한 원칙들은 프로 번역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마추어들끼리 내가 맞네, 네가 맞네 하면서 언성 높이는 것은 뭔가 아니라고 봅니다. 번역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좋은 번역을 위한 의견교류의 장이 되어야지, 자신의 번역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은 번역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번역을 해야하는 것일까요? 바로 번역을 하는 사람이 많은 연습을 거치면서 세운 자신만의 기준을 잣대로 번역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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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꺼내는 이야기가 직역과 의역에 대한 것입니다. 우선 직역과 의역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볼게요.

직역(直譯) ꃃ외국어로 된 말이나 글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함.
의역(意譯) ꃃ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는 번역.


 직역의 사전적 의미에서 "외국어로 된 말을 각 단어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범위까지 해당되는지는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이건 상당히 애매한 정의라서 논란이 되지요. 어떤 분들은 일본어 원문을 우리말과 1:1로 옮기는 것을 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니에서 자신이 들은 일본어 대사와 자막의 대사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의역을 했다고 생각하시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참, 절대로 질문하신 분을 비하하거나 탓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적절한 예가 잘 생각이 안나서 할 수 없이 인용하는 것이니까요. ^^; 애니「PEACE MAKER 쿠로가네」의 제24화 중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괄호 안은 일어 문장을 그대로 옮겼을 때의 해석입니다.

 約束するよ。(약속할게) / 刀は抜いても (칼은 뽑아도)
 ぜったい (절대) / ずっと (계속) / 殺さないから。(죽이지 않을 테니까.)


 그 때 저는 ぜったい, ずっと라는 단어의 음절수(각각 4, 3자)와 문장의 매끄러움을 고려하여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약속할게 / 칼을 들어도 / 앞으로도 / 절대로 / 죽이지 않겠다고.

 그래서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신 한 분이 "칼을 들어도 절대로 쭈욱 죽이지 않을께 순서아닌가요?"라고 게시판에 글을 남기셨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까요? "I go to the park."라는 문장을 "나 간다 ~에 공원"이라고 써 놓는다고 이것을 번역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난 공원에 간다"라고 써야 비로소 번역했다고 말하죠.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의역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즉, 자연스런 문장을 위해서 어순을 바꾸거나 일부 문장 성분을 생략 또는 첨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의역이 아니라 엄연한 직역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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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번역을 하면서 거의 대사 하나하나마다 원문에 담긴 뜻 그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제가 괜히 의역을 한답시고 이런 대사를 저런 식으로 바꾸면 작품과 어긋나는 대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은 원래 대사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원래 문장하고 뜻이 달라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뜻이 통하도록 말을 바꿀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명탐정 코난」제366화에서는 몇 가지 낚시용어가 등장합니다. ぼうず는 '꼬마, 스님'이라는 뜻도 되지만, 낚시용어로서 '물고기가 하나도 잡히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고 해요. 그래서 작품 중에 이런 말장난이 등장합니다.

 (낚시꾼이 꼬마의 빡빡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로 듣는다고 다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애시당초 나이도, 머리모양도 ぼうず(꼬마, 스님)이지 않느냐.
▷꼬마는 ぼうず니까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할 것이라는 뜻.


 그런데 일본어로 말장난을 친 이 대사를 있는그대로 옮겨봤자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의 머리에는 제대로 들어갈 리가 만무합니다. 번역은 외국어로 된 것을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인데, 그게 달성되지 못한다면 번역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겁니다. 그래서 ぼうず와 똑같은 뜻의 우리나라 낚시용어를 찾아봤더니 '몰황'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저는 애니 속에서 꼬마들의 조끼 색깔이 노란색인 것에 착안하여 이렇게 옮겼습니다.

 말로 듣는다고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
 너희들 옷 색깔은 '몰'아서 '황'색이잖느냐.


 원래 문장과는 정말 전혀 다른 뜻의 문장이 되었지만, 원문이 전하려던 뜻과는 나름대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   *   *

 어쨌든 이렇게 번역을 하면서 상황에 따라서 직역을 쓸 수도 있고 의역을 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일본어를 해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역이니, 의역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를 '자연스런 우리말로 옮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가 번역해 놓은 것을 보고서 일본어를 떠올리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 저의 번역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해서 읽을거리를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보신 글일지도 모르겠으나, 애니 번역으로 유명하신 프리랜서 번역가 윤희선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 http://www.manhwain.com/ez2000/ezboard.cgi?db=manhwain_mymanhwa&action=read&dbf=1756&page=3&depth=2

by 守辰사랑 | 2004/09/16 21:32 | †번역과 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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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ECRET at 2005/05/28 11:41
오! 몰황! 그런 방법이.. 놀랐습니다.
만화책을 볼 때도, 한국아판이 원판(일본어판)과 틀린 번역을 하면 사실 좀 짜증이 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꼭 그렇게 느껴지지만은 않네요.
근데 그 '몰황' 번역으로 인해서 질문글이 꽤 쇄도했을것 같은데, 없었나요?;;
음, 그리고 저는 영어와 일본어가 비슷한 점이 꽤 많다고 생각해요. 문장의 순서라던가.. 대부분 일본어와 한국어의 문장순서가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Commented by 守辰사랑 at 2005/05/29 16:16
SECRET / 아뇨, 질문글은 없었습니다. 다들 '이 녀석이 번역하면서 우리말로 장난질 한번 쳐봤구나(...)'하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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